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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만월대 남북공동 발굴조사 사업
날짜
2025-10-14 15:49:29
조회수
270
개성 만월대 남북공동 발굴조사 사업. 남북역사학자협의회 김경순 사무국장.

개성 만월대는 918년 태조 왕건이 개경으로 천도하며 지었으며, 이 궁궐은 고려 왕조 정치, 문화의 중심지였다. 1361년 홍건적 ㅊ ㅣㅁ입으로 불타 폐허가 되었고, 이후 조선시대에는 과거시험장과 연회장으로 쓰였다. 영광과 오욕의 역사를 거치며 천 년을 이어온 장소가 바로 개성만월대이다.

당시 남측 역사학자들은 개성의 지형을 이해하기 위해 현장 연구가 필요했지만 접근할 수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 고려 왕궁터 중심부에 다가깆 못했던 남측 연구자들에게 이는 큰 한계였다. 2007년 남북이 함께한 만월대 공동 발굴은 오랜 숙원을 푼 문화유산 협력의 획기적 출발이었다.

만월대 발굴 협력은 2005년 개성역사지구 세계문화유산 등재 논의에서 시작됐다. 남ㅂ구은 문화유산 복원 방식과 교류 방식에서 큰 차이를 보였으나, 솔직한 질문과 답변을 통해 간극을 좁혀 갔다. 이 과정 속에서 양측은 난관을 넘어 합의에 도달 할 수 있었다.

2007년 봄, 1만 평 규모의 시굴조사가 시작되었다. 모눈종이처럼 구역을 나눠 조사한 결과, 유적은 잘 보존되어 있었고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성과가 기대 이상이어서 그 해 가을 곧바로 본격 발굴로 이어졌다.

만월대 발굴은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2010년 천안함 사건 이후 5.24조치 발표 직전 철수, 2011년 김정일 위우넞아 사망으로 조기 철수 .2014~5년. 광복 70주년을 맞아 장기 발굴, 금속활자 출토 성과. 2016년 북한 핵실험, 개성공단 전면 중단, 북측 단독 활자 발굴. 2018년 제재 속 제한적 발굴, 그러나 결국 중단.

만월대가 품은 보물들 : 청자음각모란당초문대형기, 고누기와, 월개동똥 명문기와, 고려 금속활자, 새모양 잡상기와, 용두잡상기와

2015년 발굴 현장에 북측 조사원이 남측 손님들을 위한 '약개'라며 데령노 강아지 두 마리는 '송악'과 '만월'이란 이름ㅇ르 얻어 남북 조사단의 마스코트가 되었다. 그러나 핵 실험과 개성공단 폐쇄로 발굴이 중단되며 다시 만나지 못했지만, 이 강아지들은 분단 속 작은 연대의 상징으로 남았다.

개성에서 남측 조사단은 개성공단 숙소에, 북측은 민속여관에 머물렀다. 점심 도시락과 개성 특산 우메기, 오이냉국과 북한 아이스크림을 함께 나누며 교류가 이어ㅕㅈㅆ다. 함께 생활한 조사단은 가족 이야기를 나누고, 시험을 치르러 간 남측 조사원에게 북측 동료들이 응원 편지를 전할 만큼 가까워졌다.

만월대 공동발굴은 단순한 문화재 조사가 아니라 남북이 서로의 시각을 공유하고 토론하는 역사 복원 작업이었다. 정치 상황에 따라 중단과 재개를 반복했지만, 상호 신뢰와 학술적 성과를 샇으며 중장기 협력을 ㅗ발전했다. 석재 구조물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훼손을 최소화하는 발굴 재개가 필요하며, 이는 역사에 대한 책임이자 미래를 향한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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